도발적인 질문 하나. 환경. 인권. UN 지속가능성 헌장 같은 ‘가치’들은 정말로 ‘가치있게’ 다뤄지고 있나. 다소 '도덕책스러운' 키워드들 탓에 도발적인 질문이 아니라 따분한 질문으로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기준으론 이런 ‘가치’들은 도파민을 쏟게 만드는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어쩌면 지금 우린 모두가 ‘내 코가 석자다’를 외치며 외면을 합리화하고 있는 중인 건 아닐까.
가치가 ‘낫 마이 비즈니스 Not My Business’인 시대에, 가치를 아이템 삼아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20대가 있다. 가치쿡쿡의 강민정 대표를 만났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가치쿡쿡’이라는 서비스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강민정이다.
‘가치쿡쿡’에 대해 소개해달라.
교육과정에서 ‘국영수’처럼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게’ 다뤄져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환경, 인권, 지속가능성 같은 것들.
‘가치쿡쿡’은 교육을 통해 이것들이 계속해서 가치있게 남아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한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고, 더 많은 분들이 더 쉽게 이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육키트’를 개발하기도 한다. 요리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그럴듯한 한 상을 차릴 수 있는 밀키트처럼 누구나 쉽게 가치 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보재 세트다. 가치쿡쿡이란 이름도 밀키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공공 영역에서 다룰 법한 일처럼 들린다. 개인이 도전하기에 쉬운 분야는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가치쿡쿡을 창업하게 되었나?
‘사회적 가치’나 ‘개발협력’ 같은 말이 남들에겐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내겐 늘 관심 분야였다. 첫 사회경험은 코이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때 공정무역단체 인턴으로 일하면서 현장에 교육을 나가봤는데 그게 너무 재밌더라. 인턴 계약이 종료되고 나서도 계속 강사로 일할 정도였다. 같이 일하는 분들과 뜻도 잘 맞았고. 더 넓은 범주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길 자주 나눴는데, 그걸 그냥 말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작게나마 행동해 보잔 생각으로 교육도 다니고, 지원 사업에 신청도 하고, 이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가치쿡쿡' 창업까지 이어지게 됐다.
*한국 국제 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 대한민국과 개발도상국가와의 우호 협력관계 및 상호 교류를 증진시키고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각종 협력 사업을 통해 국제협력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
즉흥적으로 시작한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긴 하다. ‘창업’하면 흔히 생각하고들 하는, 차고에서 밤새 매진하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고.(웃음) 그래도 되새겨보면 가치쿡쿡을 창업하기로 했을 때,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땐 교사가 너무 너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세상을 이루게 되는데, 그 아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직업이란 생각에. 하지만 입시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고, 대학교는 ‘아프리카 학과’로 갔다. 언젠가 먼 훗날에 아프리카에 교육 단체를 설립하고 싶단 막연한 꿈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대학교에서 ‘개발 협력’이란 키워드를 접했고, 어쩌면 이 단어를 파다 보면 먼 훗날이 아니라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덕분에 코이카에서 일을 하게 됐고 그게 가치쿡쿡 창업까지 이어졌다.
학교로 교육을 나가기도 한다고 들었다. 교사라는 처음 꿈과 닮아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맞다. 조금씩 엇나가긴 했지만 크게 보면 내가 원하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던 중이었다. 창업을 한 것도 원래부터 관심이 있는 분야였으니깐, 이렇게 시작해 보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 때문이었다.
코딩 이야기를 해보자. 어렸을 땐 교사가 되고 싶었고, 대학생 때는 개발 협력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는데 코딩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
5년 전에 국비지원 학원 광고를 보고 앱 개발 수업을 신청한 적 있다. 코딩을 배워두면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게 됐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고, 그때 마침 만들고 싶었던 앱이 있어서 호기롭게 등록했다.
어떤 앱을 만들고 싶었나.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에선 임산부가 출산 중 사망하는 일이 굉장히 빈번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이전에 밝혀지지 않은 역병이 돌거나 최첨단 기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혈하는 방법, 파상풍 예방하기 위한 소독법 같은 기본적인 위생 지식의 접근성이 떨어져서다. 이런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올려줄 수 있는 어플을 개발하고 싶었다.
야심찬 기획이다.
맞다. 당시엔 어렵단 생각보단 도움이 될 것 같단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굉장히 야심 차 보인다.
코딩이 어렵진 않았나.
어려웠다. 어렸을 때부터 취미가 엑셀이기도 했고, 컴퓨터 학원에서 ITQ 자격증도 땄었기에 컴퓨터에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난 수업을 굉장히 열심히 듣는 스타일이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는 그런…(웃음). 그런데도 무슨 얘길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처참한 실패였다.
최근에 스파르타코딩클럽에서 코딩에 재도전을 했다.
맞다. 아직 미련이 남았다. 여전히 기술을 배워두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AI로 웹사이트 하나가 뚝딱’이라는 수업의 광고를 봤는데, 쉽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을 들어보니 어땠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으면서도, 행동을 이끌어내는 강의였다. 강의 하나하나의 시간이 짧은데도 꼭 필요한 것만 임팩트 있게 설명해 줘서 다시 흥미가 생겼다. 이전에 실패한 적이 있어서 겁을 먹었는데 수업이 재밌고 부담이 없다 보니 뭔가를 만드는 데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더라.
지금은 뭘 만들어보고 싶은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창업 초기 단계다 보니 아직 서비스를 소개할 수 있는 홈페이지가 없다. 가치쿡쿡이 어떤 팀인지를 알릴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소소한 목표다.
다시 가치쿡쿡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가치교육’을 위해 창업을 했는데, ‘가치 교육’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프리랜서 강사로 전국에 교육을 하러 다닌다. 그러다 보면 지역마다, 학교마다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어떤 곳에선 학급의 분위기가 놀랄 만큼 섬찟하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적개심을 보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런 곳은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 거다.
반면에 가치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은 아이들은 서로를 대하는 눈빛부터 다르다. 귀 기울일 줄 알고, 서로를 존중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이런 곳에서 수업을 하면 정말 행복하다. 같이 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아이들이 ‘어 세계시민 쌤이다’하고 불러주는 것도 기쁘고, 수업이 끝날 때 마이쮸나 머리방울 같은 작은 선물이라도 받는 날엔 엄청나게 큰 보답을 받은 기분도 든다.
이 모든 순간이 가치교육이 필요한 근거가 되어준다. 아이들의 적개심은 더 열심히 해야 할 이유고, 아이들의 미소는 이 일을 선택한 덕분에 누리는 행복이다.
현장에서 힘을 얻는 편인 것 같다.
맞다. 교육을 한번 나갈 때마다 이 일이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한번은 합천의 산골짜기 학교에 출강을 나간 적 있다. 그때 교장선생님까지 마중을 나오셨는데, 그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말 좋은 교육을 많이 해주고 싶은데, 여기까지 강의를 해주러 오는 사람이 없다. 교통비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니깐 와주는 사람이 없다.”
그날 들은 이야기 덕분에 교육 키트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가치교육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선명해졌다.
가치교육을 통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훼손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세상을 꿈꾸는 게 우스워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간혹 가치교육을 한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라거나, ‘지구 반대편까지 신경을 써서 뭐 하냐’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오해다. 가치교육은 지구 반대편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거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 아닌가. 인권과 지속가능성, 존중에 회의를 품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는 사회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행복이 곧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이 모든 건 다 연결되어 있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회복해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온전히 유지되는 세상을 꿈꾼다.
스파르타코딩클럽의 슬로건은 ‘누구나 큰일 낼 수 있어’다. 가치교육을 위한 창업은 굉장히 ‘큰일’처럼 들리는데. ‘큰일’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나.
설명을 하다 보니 ‘가치 교육’이나 ‘창업’같은, 굉장히 큰일처럼 들리는 단어를 쓰긴 했지만, ‘큰일을 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브랜딩’도 잘 모르고, 어떻게 해야 이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많지 않은, 모든 게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도 멈춰있지 않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냥 밥 잘 챙겨 먹고,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작은 계기들을 만들어내는 거야말로 ‘큰일’이 아닌가 싶다. 큰일을 내는 법은 잘 모르겠고, 계속 살아내는 게 큰일 같다.
이 인터뷰가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
스스로의 서투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다고 믿는 일을 선택해 도전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인터뷰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면 좋겠다. 남들이 많이 가는 방향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이 특이한 선택들이 축적된 것 곧 ‘나’라고 느낀다. 본인의 선택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면 기쁘겠다.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20년 뒤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한 말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석학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 위기는 갈수록 심해지고 세계 여기저기서 전쟁이 계속된다. 환경, 인권, 지속가능성 같은 가치들은 다가올 미래에 사회를 지탱하기에 충분할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출강 요청이 오면 교육 가서 아이들 만나고, 교육키트도 열심히 만들고, 밥 잘 먹고, 틈틈이 코딩을 배워서 웹사이트도 만들고, 새로운 기회를 상상해 보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마음이 훼손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거창한 꿈을 꾸면서도, ‘살아내는 것만 해도 큰일’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20대 강민정의 이야기를 레퍼런스 삼아보는 건 어떨까.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그냥 해보기,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내기, 짬이 좀 나면 희망도 한번 찾아보기. 이 정도가 지금 취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일 것이다.
누구나 큰일 낼 수 있어
스파르타코딩클럽
CREDIT
글 | 이상우 팀스파르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