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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개발자 채용 공고를 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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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라이브러리

어느 락스타의 노래처럼

조회수 367·6분 분량
2023. 12. 19.

인생의 BGM을 하나 선곡한다면 어떤 곡이 어울릴까. 세상에서 내가 최고라 외치는 어느 아이돌의 히트곡? 비트는 빠르지만 가사는 슬픈 지나간 명곡? 통통튀는 반주에 희망을 노래하는 인디 가수의 숨은곡?


개발자 이정익 님은 하드 락 음악을 선택했다. 1979년 발매된 호주 밴드 AC/DC의 Highway To Hell(지옥행 고속도로). 곡 속의 화자는 멈춤 표지판도, 속도 제한도 없이 지옥행 고속도로를 내달리며 내게 관심을 꺼줄 것을 당부한다. 불안의 시절을 담고 있는 가사지만, 리듬과 멜로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기만 한다.


Seson ticket on a one-way ride(인생은 편도 티켓이잖아)🎵
Asking nothing, leave me be(아무것도 묻지말고, 날 내버려 둬)🥁


보수적인 기업 문화, 코로나19로 인한 휴업, 워라밸이 부족했던 삶을 겪어내고 개발자라는 직업에 도착한 이정익 님은 이 여정이 우울하지만은 않았다고, 오히려 즐거운 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Highway To Hell’이라는 노래를 선택했다며. 누군가는 지옥행 고속도로라며 우려했지만 지나고 나니 이 라이딩은 찬란함 그 자체였다고.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새로운 찬란함을 기대하며 이제 막 개발자의 삶을 시작한 정익 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Chapter 1 : 누군가는 방황했다 치부하겠지만 난 헤쳐나가는 중이었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면접에서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답했다. 많은 걸 경험해 본 개발자. 직무를 3번이나 바꿨다.


직무를 3번이나 바꿨다니. 처음으로 시작하는 일은 무엇이었나.

대학에서 토목과를 전공해 토목 설계사로 취업을 했다. 교수님이 추천한 직장이었다. 도로, 상하수도 옹벽, 아파트 부지 등을 설계했는데 가리지 않고 다 해서 ‘잡토목’이라고 불리는 분야였다. 워낙 보수적인 분야라 성미에 잘 안 맞았다. 2년을 버티다가 결국 관뒀다.


평생 울산에서만 지냈는데 이때 도망치듯 서울로 이사를 왔다. 별 계획도 없었고 단지 ‘서울로 도망가자’라는 마음에서였다.


서울에서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더라. 그래서 첫 번째 커리어 전환을 하게 됐다.


아무런 필터 없이 채용 공고를 쭉 내리길 며칠 째. 연예인 매니저 공고가 눈에 띄었다. 특별한 스펙이 필요 없었고 무엇보다 숙소를 제공했다. 게다가 내 삶에 모티베이션을 주는 음악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직업이니 괜찮겠다 싶었다. 10군데 이상 지원해 딱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공원소녀’라는 아이돌의 매니저로 배치됐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직무 전환을 했다. 매니저 일이 잘 안 맞았나.

근무시간도 불규칙했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방송,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는 나랑 잘 맞았다. 이 업계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편집 기술을 배워 영상 PD로 취직했다. 꾸준히 하다보니 감독까지 맡게 됐고 TV CF도 찍었다.


드디어 평생 직업을 만났나 싶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나타났다.


코로나가 어떤 영향을 줬나.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주로 여행 관련 영상을 만들었다. 코로나로 여행 업계가 무너지자 우리 회사도 함께 무너져 휴업 상태가 됐다. 코로나로 영상 산업 전체가 침체돼서 이직도 힘들어졌다.


다시 연예인 매니저로 돌아갔다. 다행히 대형기획사인 하이브에 취직했고 르세라핌의 매니저로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까지 함께했다.


‘르세라핌’이라니. 유명한 아이돌 아닌가. 매니저 생활은 어땠나.

누군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이 언제냐’라고 물으면 ‘르세라핌이 데뷔한 날’이라 답할 정도로 찬란한 순간들이었다. 지금도 이 순간을 동력 삼아 살고 있을 정도로.


난 이 친구들이 짧게는 몇개월 동안, 길게는 몇 년 동안 쌓아올린 시간들을 모두 알지 않나. 데뷔 날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나도 같이 빛나는 기분이 들더라. 이때 이 친구들을 보면서 ‘포기 안 하면 뭐든 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나 보람 있는 일이었는데, 왜 계속하지 않았나.

대형기획사이다 보니 이전보다 처우는 훨씬 좋았다. 열정적인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연예인 매니저라는 직업적 특성 상 내 삶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힘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힘들었고, 주말이나 휴일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아내도 같은 업계라 어느 정도 이해해주긴 했지만 좀 더 일정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다.


매니저를 그만둔 시기는 20대 끝자락이었다.

누군가는 불안하고 방황했던 시기라 하겠지만, 난 내 식대로 즐겁게 모든 걸 쉽게 헤쳐나가는 중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조차도 잘 몰랐던 어느 도착지로 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불안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곧 서른인데 무직이었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겠나.(웃음)



Chapter 2 : “나 코딩 좀 하는 것 같은데?”

정익 님도 잘 몰랐던 도착지가 코딩이었나.

그렇다. 매니저를 그만둔 시기에 개발자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얕은 코딩을 하는 걸 보고는 개발자를 해보라고 권하더라.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인터넷으로 풀스택 개발자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정말 친구의 말처럼 내가 코딩에 소질이 있는 것 아닌가. 이때 개발자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혼자서 취업 준비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국비지원 부트캠프인 ‘내일배움캠프’에 합류했다.

혼자서만 공부하다 보니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 나만의 착각일 수 있겠다 싶어 객관적으로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또, 비전공자이다보니 어떻게 해야 개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내일배움캠프를 선택한 건 국비지원 부트캠프 중에 가장 단기간에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취업하고 싶었고, 코딩 공부를 해보니 집중해서 하면 실제로 공부한 기간은 별로 안 중요하더라.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우아한 테크 코스 등 큰 기업의 교육 과정도 고민했는데 이곳들을 계속 준비했다면 1년이 지난 지금도 공부 중이었거나 속된 말로 굶어죽지 않았을까.


프론트엔드 개발을 하는 React 트랙을 선택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토목설계사, 영상PD, 매니저. 내가 그동안 해온 직업들에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긴 하다. ‘보여지는 것’. 토목설계사는 도로와 같은 인프라를, 영상 PD는 영상물을, 매니저는 연예인을 세상에 보여주는 직업이다. 같은 맥락으로 백엔드가 아닌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내일배움캠프 생활은 어땠나.

광고로 ‘비전공자도 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홍보하지 않나. 솔직히 의심했는데 내일배움캠프는 정말로 그런 곳이었다.


비전공자들은 전공자에 비해 CS(Computer Science)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내일배움캠프에서는 수료생들이 취업 시장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틈틈이 CS 특강을 해 주더라. 개발자로 일해보니 이 강의들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4개월 동안 힘들기도 힘들었는데 재밌었다. 최종 프로젝트 마지막날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서 팀원들과 방 하나를 빌려 밤을 새기도 했다. 보통 취업을 위한 교육 과정은 지식만 얻기 마련인데 내일배움캠프에서는 개발자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태도까지 배웠다.


내일배움캠프 최종 프로젝트
정익 님이 내일배움캠프에서 완성한 최종프로젝트 'Codefolio'.


Chapter 3 : 앞으로 개발자를 그만둘 확률은 딱 3%.

내일배움캠프 합류 전과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자신감. 매니저를 그만둔 뒤에는 인생에서 가장 불안한 시기를 겪었다.


그런데 내일배움캠프에서 꽤 잘한다는 평가를 받다보니 어느새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프론트엔드 개발자 채용 공고를 검색하면 얼추 200개 정도가 나왔는데, ‘전국의 프론트엔드 개발자 취준생 중 200등 안에만 들면 되잖아?’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다.


근거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나보다. 수료 후 한 달만에 취업에 성공했다.

사실 서류 탈락을 150개 정도 했다. 계속 탈락하는 와중에도 ‘면접만 가면 붙을 수 있다’고 되뇌며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남들보다 사회 생활 경험이 많았고 그동안 그만둔 회사에서 다시 일 하고 싶다는 연락도 수차례 왔기 때문에 면접관 앞에서 내가 일 하기 좋은 동료임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감 덕분이었는지 두 번째로 면접 본 회사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AI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회사였다.


수료 후 일년 사이에 이직도 했다고 들었다.

취직한 지 4개월 정도 됐을 때 지금 다니고 있는 연예기획사 ‘모드하우스’에서 좋은 오퍼가 왔다. 마침 연예기획사의 에너지틱한 분위기가 그립던 차였기 때문에 고민 없이 이직을 결심했다.


직무 전환을 3번 한 끝에 개발자를 하고 있다. 또 직무 전환을 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3% 정도? 보통 자연재해가 일어날 확률이 3% 정도 된다고 하니 딱 그만큼의 확률이다. 바꿔 말하면 내가 의도적으로 직업을 바꿀 가능성은 0%다. 이번에야말로 평생을 해도 좋을 직업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10대로 돌아가 대학 전공을 선택한다면 컴퓨터공학과를 가고 싶을 정도로 개발자라는 직업이 만족스럽다. 지금까지 해왔던 직업들은 정답이 없어서 나만의 최선을 찾아야 했던 반면, 개발자는 정답이 있다. 더 재밌는 건 정답으로 가는 길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딱딱해 보이는데 굉장히 유연한 직업이다. 논리력, 크리에이티브, 커뮤니케이션 모두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나.

늘 주어진 몫보다 10% 더 하는 사람. 지금도 출퇴근 시간에 회사에서 한 일을 복기하고 어떤 선택지가 더 나을까 찾아본다. 주말에는 하루는 쉬고 다른 하루는 앱 개발 공부를 한다.


정익 님의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라나.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 내 이야기를 쭉 들어서 알겠지만 난 30살이 되기 직전까지 ‘뭘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찬란했던 순간을 계속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에겐 르세라핌 데뷔가 그런 순간이었다. 찬란한 순간을 다시 맞이하려면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야할지 계속 다짐했다.


다시 찬란한 순간을 맞았냐고 물으면, 솔직히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가 되는 삶 속에 놓인 것만은 확실하다. 내 이야기가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정익 님에게 ‘큰일’이란.

나의 20대. 20대에 정말 많은 것을 겪었고 더 단단해졌다. 원래 지닌 내 장점보다 더 많은 장점을 이때 얻었다. 30대는 이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하는 게 새로운 ‘큰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 이정익 님의 큰일코드
while (isFUN):             
            doit()
"재미가 있다면 무엇이든 끝까지 합니다. 누군가는 제가 여러 번 직무 전환을 한 것을 두고 ‘방황했다’고 표현하겠지만 저는 ‘재밌을 때까지 끝까지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CREDIT | 박영경 팀스파르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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