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첫 만남이 있다. 김고은 작가는 AI와의 만남이 그러길 바랐다. 디지털 도구를 섭렵해야 하는 미디어아트 작가의 특성상 생존하기 위해선 필시 AI를 배워야 했지만, ‘예술가를 대체할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녀석을 그저 배우기만 할 순 없었다. 어쩌면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AI와 어떻게 해서든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야 했다. 챗GPT가 세상을 들썩일 때도 꿋꿋이 모른 체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택한 AI 해커톤 행사 <AI와 100인의 용사들>.
“직업도 배경도 다른 100명의 참가자가 AI와 처음 만나는 거잖아요. 그만큼 강렬한 첫 만남이 어딨겠어요. AI와 사람이 만나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김고은 작가는 기대했던 만큼의 강렬한 순간을 얻었을까. 이 순간은 어떤 작품으로 만들어지게 될까. 아래 인터뷰에서 확인해보자.
Q. 자기소개를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미디어아트를 하고 있는 김고은입니다.
Q. 미디어아트는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생소한데요. 주로 어떤 작품을 만드나요?
일반적인 예술을 하는 분들과 다르게 전 컴퓨터나 전기가 없으면 살 수 없어요.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죠.
작품 하나를 말씀드리면, 대전 중앙시장에 웃음으로 게임을 하는 작품을 설치한 적이 있어요. 대전이 예전에 ‘노잼도시’로 유명했잖아요. 좀 재미있는 도시로 탈바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웃음 소리로 게임을 하는 작품을 떠올렸죠. 버튼을 누르면 마이크가 내려오고 ‘하하하’ 웃는 소리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거였어요. 설치 장소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는데, ‘웃는’ 게임을 하러 오는 사람과 ‘웃는’ 모습을 미소지으며 구경하는 사람으로 북적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
Q. 웃는 소리에 따라 보상을 주는 게임이라니, 신선하네요. 구현하는 데 꽤나 복잡한 매커니즘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미디어 아트 작가는 많이 배우러 다녀야 해요. 몸으로 표현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기술 의존성이 굉장히 강하죠. 작업실에 있는 시간보다 워크샵 같이 뭘 배우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아요. 이제 코딩은 꽤 익숙해졌죠.
AI가 등장한 순간부터 AI는 배워야 할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AI를 도구로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작품이 되어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겠지라는 바람이었죠.
Q. ‘작품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준다’. 어떤 의미인가요?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작품 활동 초기에는 주로 기술적인 측면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위험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도구를 접하는 순간에는 영감이 많이 떠오르거든요. 기술에 현혹당하는 거죠. 이런 작품들은 호기심은 줄 수 있는데, 그 이상의 역할은 못해요. ‘신기하다’ 그 다음이 없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과연 쓸모 있는 예술일까’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예술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요. 적어도 저는 이런 방식이 더 성숙하다고 생각합니다.
Q. AI도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셨겠네요.
AI는 좀 특이한 케이스죠. AI, 그 유명한 챗GPT가 등장한 지 꽤 됐지만 일부러 배우지 않았어요. ‘AI가 예술도 한다’ ‘AI가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할 거다’ 이런 얘기들을 워낙 많이 하니까 더욱더 AI를 아무렇게나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발견하고 싶었죠. 강렬하게 AI를 만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Q. 그 순간으로 AI 해커톤 행사를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각기 다른 분야의 100명이 AI를 만나는 순간을 직접 볼 수 있잖아요. 그만큼 강렬한 순간이 어디 있겠어요. 행사가 진행되는 무박 2일 동안 전 참가자였지만, 동시에 이 행사를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이기도 했어요.
Q. AI와 사람이 만나는 순간,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니 어땠나요?
AI와 사람이 만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행사장 전체를 자주 산책했어요. 원래는 질문도 해보고 할 계획이었지만, 다들 AI 서비스를 만드는 일에 너무 몰입해 있더라고요. 저야 본업에 AI가 필요하니까 열심히 하는데, 도대체 남은 99명은 왜 그럴까 궁금했어요. 열정이 너무 뜨거워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그 몰입을 깰 수 없었죠.
이들의 열정을 보니 곧 AI가 ‘당연한 도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불과 24시간만에 다들 푹 빠져버렸잖아요. 특정 계층만 쓰는 도구들과는 분명히 달라요.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익숙한 도구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Q.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도구가 될 거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익숙하다는 측면에서 세 도구들이 비슷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다른 점도 있을 것 같아요.
AI는 한 마디로 ‘말썽꾸러기 조수’ 같아요. 일단 말을 엄청 잘해요. 자주 거짓말도 늘어놓죠. 어떤 면에서는 사회화가 덜 돼 보이지만, 어떤 면은 고도로 사회화가 됐어요. 컴퓨터, 스마트폰과 달리 감정까지 유발할 수 있는 도구죠.
작품을 만드는 작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도구예요. 현혹될까봐 무서울 만큼요. 앞으로 자주 쓰게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AI에게 이용당하는 것 같아 자존심도 많이 상해요. 일상적으로 많이 쓰게 될 것 같아 괜시리 속상하기까지 하네요.
Q. 고은 님은 ‘말썽꾸러기 조수’를 데리고 어떤 ‘큰일’을 내고 싶으신가요?
‘큰일’까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AI가 거짓말쟁이라는 특징을 사용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 보려고요. AI의 유려한 말솜씨로 작가와 관객의 간극을 줄여보고 싶어요.
저를 미디어 아트의 길로 들어서게 한, 첫 도구인 ‘아두이노’를 만났을 때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어요. 아직 ‘저는 어떤 예술가예요’라고 정의할 수도 없는 초보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구현해주는 맥가이버 같은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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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 박영경 팀스파르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