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세상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순 없다” 세상이 제시하는 근거는 대게 돈이나 시간 같은, 소위 ‘현실적인’ 것들이어서 반박하기도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지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며 사운드 클라우드에 작사한 노래도 올리고, 힙합 커뮤니티 운영도 한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기. 이 당연한 듯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용산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음악, 본업, 힙합 커뮤니티 운영까지, 하고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맞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결국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건데, 하고 싶은 걸 못하면서 행복하다는 건 말이 잘 안되지 않나.
음악 이야길 먼저 듣고 싶다. 힙합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
학창 시절에 힙합을 처음 접했는데 자기 삶, 인생에 대한 이야길 음악으로 풀어내는 게 멋있다고 느꼈다. 처음엔 듣기만 했었는데 나중엔 가사도 써보게 됐고. 대학에 입학하면서는 이 학교에 힙합동아리가 있는지부터 제일 먼저 찾아봤다.
그래서 힙합 동아리에 들어갔나.
맞다.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군대 다녀와선 동아리 회장도 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크루도 만들고, 음원도 내고, 뮤비도 찍고, 공연도 몇 번 했다.
음악 쪽으로 진로를 정해야겠단 생각을 한 적은 없었나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다. 음악적 목표가 있다면 언젠가 내 이야기를 담은 앨범 하나를 내고 싶은 정도? 오히려 공연을 다니다 보니 음악 자체에 대한 욕심보단 음악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단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어떤 문제를 느꼈나
음원도 만들고, 공연도 몇 번 다녔는데 실질적인 수익은 거의 없었다. 공연비로 몇 만원 받아서 나누면 밥 값도 안 나오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주변에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라고 얘기를 했더니 “원래 음악 하면 배고픈 거 아니겠냐"라는 반응이 돌아오더라. 창작에도 시간과 자본을 투입하는데 시장 구조가 어떻길래 대가가 당연시되지 않는 걸까, 어떻게 하면 아티스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힙합 커뮤니티도 그 고민의 일환인가?
맞다. 사실 힙합 커뮤니티를 만들기 전, 대학생 때부터도 창업 시도는 꾸준히 해왔었다. 처음엔 ‘일단 사람을 모으면 뭐라도 되겠지’란 생각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힙합 콘텐츠를 올리는 일부터 시작을 했었는데, 당시엔 개발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걸로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구축하긴 어렵겠단 생각이 들어서 접었다.
그 다음엔 매출이 조금 더 손에 잡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스트릿 패션 쇼핑몰을 운영했다. 목표한 대로 매출은 나왔지만 관심 있던 문제랑 직접 닿아있는 일이 아니기도 했고 슬슬 졸업할 때도 다가와서 정리하게 됐다.
대학생 때 시험도 보고, 취업도 준비하려면 바쁘지 않나. 창업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듣고 보니 눈에 보이는 문제를 잘 무시 못 하는 성격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음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던 것 같다. “나는 뭔가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뭔가를 이뤄내면서 살고 싶다. 내 삶은 내가 개척해나가자.”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데, 어쩌다 취업을 하게 됐나.
사실 ‘난 취업은 절대 안 하고 창업으로 성공할 거야’라는, 치기 어린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깐 일단 회사에 다니면서 경험을 조금 더 쌓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무역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잘 맞지 않았다. 자연스레 창업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언젠가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진로를 찾아보게 됐다. 개발과 디자인 역량은 꼭 필요할 것 같은데, 디자인 쪽이 조금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 국비지원으로 UI/UX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취미와 본업이 창업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모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셈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건 어떤가.
재밌다. IT업계에서 일하는 게 여러모로 자극이 된다. IT 기술이 세상을 확장시키면서 기존엔 없던 가치들을 창출해 내고 있지 않나. 이걸 잘 활용하면 아티스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스파르타코딩클럽의 {창}을 알게 됐다. 개발 교육, 사업성 검증, 네트워킹 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라는 설명을 보고 내게 필요한 과정이다 싶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힙합 커뮤니티는 {창}에서 만든 건가?
{창}에선 온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의 크루 구인 앱을 만들었다. 아티스트가 프로필을 올리면 작업물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 같이 작업할 팀원을 매칭해주는 플랫폼이다. 당장 창업을 하기보단 프로덕트를 론칭하는 전 과정을 경험해 보는 데 의의를 뒀는데, {창} 마지막 뒤풀이 장소에서 힙합을 창업 아이템으로 준비하고 있는 분을 소개받게 됐다.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 운영하고 있는 ‘힙합언더’ 팀에 합류하게 됐다.
학창 시절부터 오랜 시간 힙합을 해왔고, 창업에도 여러 번 도전해왔다. 힙합을 아이템으로 하는 창업팀에 합류했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나랑 비슷한 사람, 힙합에 관심이 있고, 나랑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는데, {창}에서 지금 팀원들을 만나고 나니 이제는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조금 더 커졌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힙합 언더는 어떤 곳인가.
힙합 언더는 아마추어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작업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힙합 커뮤니티다. 아직은 법인을 낸 지 3달도 채 되지 않은 초기 단계지만 추후엔 아티스트들의 지속 가능한 창작을 돕는 서비스가 되는 게 목표다.
지속 가능한 창작이란 어떤 의미인가.
현재 시장 구조에서 아티스트는 음악이나 공연으로 먹고살기보단 먼저 창작물을 통해서 인지도를 쌓고, 그 인지도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런 활동들을 아티스트 혼자 해낸다는 건 굉장히 버거운 일이다. 이 활동을 지원하거나, 창작물 자체로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노동에는 최저임금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듯이, 창작에도 비슷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힙합 언더가 해내고 싶다. ‘음악 하면 배고프다’는 말이 당연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게 쉽진 않을 텐데, 본업과 병행하는 게 힘들진 않나.
아직 뭔가를 이뤄낸 게 없다. 시간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 일할 때보다 더 재밌다. 그냥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뿌듯했던 순간이 있다면.
다른 힙합 커뮤니티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팬 위주고, 아마추어 아티스트의 작업물이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가 사실 많지 않다. 작업물을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받을 때 가장 뿌듯하다.
큰일 어워즈 ‘메이커’ 부문 수상자다. ‘메이커’를 정의해 본다면?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사람. 1에서 100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게 세상에 더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음악이든, 프로덕트든, 무언가를 만들어내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메이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커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이왕이면 커다란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싶다. 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의 조건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더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진짜 행복이다.
따지고 보면 IT업계에서 일하게 된 것도, 코딩을 배운 것도 다 행복을 위해서였다. IT 기술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이 시점에 코딩을 할 줄 안다는 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는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큰일을 낸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세상의 변화니, 행복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이것들은 목표로 두는 순간, 오히려 하고 싶은 일과는 멀어지는 것 같다. 이런 건 전부 결승선을 통과하면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살아내다 돌아보면 보이는 풍경 같은 게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열매를 나누고, 슬픔은 감내하고 기쁨은 만끽하며 살아가기. 이게 큰일 내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법을 찾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물었더니,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다짐 같기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 타기 같기도 한, 이 동어반복적인 선문답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거창한 방법 따윈 없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숨을 쉬면서 사는 법을 묻는다면 그냥 숨을 쉬면 된다는 답 말고는 어떤 답도 기대하기 어렵듯이. 인터뷰를 마치고 지빈이 가장 힘들었던 취업 준비생 시절에 만들었다는 노래*를 들었다.
작업실은 주말마다 가지 또
월요일이 되면 다시 일터로
딱히 불행하게 느껴지진 않아
내가 엉덩이를 붙인 곳이
이코노미석이라는 사실 또한
받아들일 만도 해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일을 살아낼 기회가 주어진다. 마냥 즐겁기만 한 길은 아니겠지만, 내 선택이란 걸 기억한다면 ‘딱히 불행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쫓기로 마음먹기만 한다면 ‘내 일’을 하면서 모두의 내일을 더 근사하게 바꿔내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큰일 낼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여기에 놓여있다.
*<메모장>, 자드락
2022 큰일 어워즈
큰일 난 사람들의 큰일 낸 이야기
누구나 큰일 낼 수 있어
스파르타코딩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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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 이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