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낸 이야기’의 첫 번째 주인공은 서른 살, 취준생 이호승이다.
서른은 문제적인 숫자다. 세상에 제 자리를 마련해뒀어야 하는 심리적 마지노선. 이 선 앞에선 누구나 조급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취준생이란 신분은, 사실은 신분이 아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취준생은 차라리 허물에 가깝다. 이 허물을 쓰고 있는 동안 개인의 고유성은 그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자’로 뭉뚱그려지곤 한다. 취준생의 허물을 쓰고 서른이란 선을 통과할 때만큼 큰일에 취약한 때가 또 있을까.
호승은 인생의 어느 때보다 ‘큰일나기’ 좋은 시기에 ‘큰일낸’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응했다. 서른 살이라는 숫자와, 취준생이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2022년 겨울의 초입, 서울 근교의 자취방에서 그를 만났다.
서른 살 취준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20대 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는데, 자퇴를 했다.
왜 자퇴를 했나. 잘 맞지 않았나.
공부는 재밌었지만, 마음 한편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자퇴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니 학과가 사라졌더라. 학교에선 원하는 다른 과로 보내준다고 했지만 ‘꼭 대학만이 길인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됐다. 연 1000만 원이 넘는 등록비를 원하지도 않는 일에 투자한다는 게 비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부모님의 등골을 뺀다는 표현이 있지 않나. 내가 딱 그 꼴이다 싶었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자퇴를 결정했을 때, 미래가 걱정되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물론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을 하긴 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
자퇴 후엔 어떤 일을 했나.
처음엔 일단 경험을 쌓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식품 공장에서도 일했고, 자동차 공장에서도 일했다. 그런데 지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엔 여러모로 한계가 많더라. 더 배우고 싶고,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자퇴까지 했는데, 성장의 기회가 너무 적은 느낌이었다. 그때 서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서울 서울 하는데, 나도 한번 서울에 가서 내가 성공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서울에 가보니 어땠나.
사실 엄밀히 말하면 서울로 바로 가진 못했다. 방값 때문에…(웃음). 비록 근교지만 서울 가까이 오니 확실히 일자리도 훨씬 많고, 내가 노력하기만 한다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느꼈다. 도전의 자유라고나 할까, 이게 내가 느낀 서울의 좋은 점이다.
그렇다면 나쁜 점도 있나.
나빴다기보단,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게 조금 힘들긴 했다. 지방에서 느꼈던 여유로움이 종종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 오기가 생겼다. 밤거릴 걸으면서 내가 왜 여기에 왔는가를 자주 생각했다. 내 인생을 걸고 무언가 도전을 해보기로 결정을 내린 이상, 이 시기를 허튼 시간으로 만들어선 안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서울에서의 시간이 궁금하다. 어떤 일들을 했나.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참 많이 했다. 옷 가게에서도 일하고, 프랜차이즈 식당에서도 일하고, 반도체 공장에서도 일하고.
다양한 일들을 했는데, 생활비 때문인가?
그것도 맞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뭔지를 찾고 싶었다. 그걸 찾기 위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했던 것 같다.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이야? 평생 해도 후회하지 않을만한 일이야?’ 하고.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마다 불안하지는 않았나.
불안했다. 아무래도 부모님 손 안 벌리고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다 보니, 일을 그만둔다는 건 당장 여기 서울에서 더 살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했다. 지금은 가볍게 거쳐간 일처럼 말하지만, 당시엔 정말로 하나하나가 중대한 결정이었다. 당장 다음 달 월세를 고민해야 했던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정말 많이 불안했고, 원하는 일을 찾겠답시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찾았나?
찾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서울에 와서도 동네 체육관에 축구를 하러 꾸준히 나갔었다. 자주 나가다 보니 축구 코치님이랑 친해졌고, 어쩌다 보니 방과 후 축구 코치로 일을 하게 됐다. 아이들이 말을 따라 주는 게 즐겁기도 했고, 가르치는 대로 아이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방황을 해오던 거였는데, 축구 코치라면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다. 진지하게 축구 코치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준비를 시작했다. 자격증도 따고, 실기 준비도 하고…
그런데 왜 그만두게 됐나?
코로나가 터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체육센터는 문을 닫았고 방과후 수업은 사라졌다. 가뜩이나 선수 출신이 아니라 제약도 많은데, 언제 정상화될지 기약이 없으니 무작정 기다리기가 어렵더라.
외부 요인으로 관두게 된 상황인데, 힘들진 않았나.
힘들었다.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좌절을 맛봤다. 눈앞이 캄캄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겨우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 게 원망스럽기도 했고,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란 생각도 들었다. 겨우 찾았다고 생각한 빛이 사실은 빛이 아닌 느낌이었다.
지금은 개발자 취준생이다. 코딩은 어떻게 알게 됐나.
사실 올해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한 해다. 반복되는 실패, 좌절이 쌓이면서 도전을 하러 서울에 왔다는 사실에도 회의감이 들었다.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니깐 ‘나는 정말 될 사람이었을까?’ 란 생각도 들더라. 그때 개발자로 일하고 있던 지인이 ‘이런 쪽으로 알아보면 어떻겠냐’며 넌지시 권해주더라. 코딩이 뭔지도 몰랐지만 뭐라도 해봐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바로 유튜브에 검색해서 공부를 해봤다. 손으로 치는 대로 화면에 구현이 되는 게 재밌었다.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데, 코드는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그렇게 개발자 쪽으로 진로를 알아보고 있다가 스파르타 국비지원 내일배움캠프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당시 상황에선 내일배움캠프 지원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맞다. 반복되는 실패를 겪으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어 있던 시기였기에 지원서를 쓰는 일 자체가 감정적으로 쉽지 않았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어땠나.
내일배움캠프 합격 소식이 올해의 첫 번째 성공이었다. 오버인 것은 알지만, 그게 꼭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그 빛을 꼭 잡아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작은 성공이지만 다시 도전할 마음을 먹기엔 충분했던 것 같다.
재미를 느꼈다곤 했지만 코딩이 마냥 쉽지만은 않을 텐데, 비전공자로 부트캠프에 지원하는 게 겁나진 않았나.
사실 내일배움캠프에 지원하기 전에, 스파르타코딩클럽의 웹개발 종합반이라는 강의를 들었었다. 그땐 비전공자라 겁을 많이 먹었었는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까 너무 재밌었다. 못할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수업을 들으면서 연예인을 응원하는 페이지를 만드는 걸 했었는데 결과물이 남으니까 성취감도 있더라.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부트캠프에서 공부하면서 벽을 느껴본 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왜 없었겠나. 팀원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데 처음엔 내가 맡은 부분이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한 대로 코드를 짰는데 안되더라. 왜 안되는지도 모르겠고. 그땐 ‘아 나는 안 되나?’ 이런 생각도 잠깐 들었는데 팀원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계속 구글링하고 물어보고…그러다 보니 결국엔 되더라. 회고 시간에 팀원들이 ‘호승님이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작동하는 거다’라고 얘기해 줬는데, 그땐 정말 울컥했다. 풀지 못했던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해냈다는 사실이 꼭 내 삶의 성공에 대한 믿을만한 근거처럼 느껴졌다.
이전에도 실패를 많이 겪었고, 그만큼 극복도 많이 했을 텐데, 그때와 다른 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전엔 극복이라기보단 버티는 느낌이었다. 학과가 사라지거나, 코로나로 체육관이 닫는 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코딩을 하면서 느끼는 벽은 달랐다. 사실 코딩을 하다 보면 벽을 만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서 있는 입장이고, 당연히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 하지만 결국엔 내가 뚫어낼 수 있는 벽이란 걸 안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끝까지만 한다면 결국엔 내가 넘을 수 있는 벽이고 무너뜨릴 수 있는 벽이란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개발자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서 일상의 모습도 달라졌을 것 같다. 요즘 생활은 어떤가.
한참 힘들었을 땐 죽지 못해 사는 나날이었다. 그냥 살아있으니까 하루를 사는 느낌. 목표를 잃어버린다는 게 정말 무서운 일이더라. 지금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다. 코딩을 하면서 작은 성공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니 다시 내가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궁금해졌고, 그 궁금증을 쫓을 힘이 생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밤에는 하루 동안 공부한 것도 정리하면서 나름 규칙적으로 산다.
수료 이후의 목표도 궁금하다.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나.
아직은 배울게 많아서 멀리 생각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게임이 있는데, 그 게임을 만드는 취업하고 싶단 생각을 하긴 한다. 이전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일이, 이제는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불가능하진 않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사실 중요한 것은 회사보단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개발자로 계속 벽을 깨부수며 성장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큰일어워즈 수상자로 선정됐는데, ‘큰일을 낸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
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 ‘큰일났다’라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마다 힘들긴 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엔 결국엔 내 삶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코딩이라는 희망의 빛을 찾아내고 돌아보니 그동안 실패라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낸 도전이었더라. 개발자가 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일지,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알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큰일을 내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한다. 이제는 내가 큰일 낼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세상은 엉망이어서 군대를 다녀왔을 뿐인데 학과가 사라질 수도 있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곳이 고향일 수도 있다. 축구 코치를 진로로 결정했는데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서 체육관이 기약 없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큰일은 그렇게 찾아와 삶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삶의 주인이다. 학과가 사라지면 내가 바라는 일을 찾아 도전을 해볼 수 있고, 고향에 기회가 없으면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 수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만 않는다면 쌓이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도전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호승에게 비슷한 좌절을 겪고 있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취준생이 조언을 한다는 게 당치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에게, 그러면 20대의 본인에게 해주는 말이라면 어떻겠냐고 재차 물었다. 주저했던 게 무색할 만큼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어떤 도전을 하고 있든, 그 도전이 절대 실패로 끝나진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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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큰일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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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 이상우